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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투데이] 영수 회담을 통한 ‘민생 협치’를 기대한다
 
2024-04-18 12:53:32
◆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정치개혁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여당의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인 16일 국무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통해 4·10 총선 결과에 대한 입장과 향후 국정 쇄신 방향에 대해 밝혔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지난 2년 동안, 국민만 바라보며 국익을 위한 길을 걸어왔지만,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고 하더라도 세심한 영역에서 부족했다”,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는 모자랐다”고 밝혔다.

향후 행보에 대해선 “이번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더 낮은 자세와 유연한 태도로 보다 많이 소통하고, 저부터 민심을 경청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의 총선 패배에 대한 입장은 형식과 내용에서 흡족하지 못했다. 우선, 기자회견이나 대국민담화가 아니라 국무회의 발언을 통해 입장을 전달했기 때문에 국민에게 한 것인지 국무위원에게 한 것인지 모호하고 혼란스러웠다.

김대중(DJ) 정부 집권 2년 직후 실시된 2000년 4월 총선에서 이회창 총재가 이끈 야당인 한나라당은 133석을 얻어 승리했고, 집권당인 새천년민주당은 115석으로 패배하면서 여소야대가 됐다. DJ는 총선 패배 나흘 만에 TV로 생중계된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국민을 상대로 담화를 발표하니 훨씬 생동감도 있었고 진정성도 묻어났다. 주목할 만한 담화 내용도 있었다. DJ는 “총선 민의는 어느 쪽도 승자로 만들지 않고 여야가 협력해 정치를 안정시키라는 준엄한 명령”이라며 “앞으로 협력관계, 남북관계 등 중요한 국사를 협의하기 위해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 가까운 시일 안에 여야 영수회담을 갖기로 제안한다”고 밝혔다. 현직 대통령이 영수 회담을 제안했다는 것이 파격이고 감동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발언에서 이재명 대표와의 회동 자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한민수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윤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는 조금이라도 국정의 변화를 기대했던 국민을 철저히 외면했다”며 “불통의 국정운영에 대한 변명만 늘어놓은 독선적 선언”이라고 혹평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들과 달리 야당 지도부와의 소통에 인색했다. 집권 2년 동안 이재명 대표와 단 한 번도 공식적인 단독 회동이 없었다. 통상 대통령은 해외 순방 후에 여야 지도부와 회동해 순방 성과를 설명하는데 이런 것도 없었다. 이재명 대표는 지금까지 8번 영수 회담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여당이 이렇게 역대급 참패를 당하고 야당과 협치하지 않으면 국정운영이 어려운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영수 회담 회동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의외다.

윤 대통령이 이 대표와의 단독 회동에 대해 부정적인 이유는 재판을 받고 있는 피의자와 만날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정치와 수사는 다르다. 정치로 풀 것은 정치로 풀어야 하는 데 사법적 잣대를 들이밀면 정치와 협치는 실종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월 KBS 특별 대담에서 “대통령실은 여당과 별개이기 때문에 우리 당(국민의 힘) 지도부를 배제하고 야당의 지도부를 (먼저) 상대한다는 것은 대통령으로서 집권 여당 지도부와 당을 소홀히 하는 처사”라고 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단독 회동을 멀리한다는 것은 아집이고 총선 참패의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보는 처사다.

윤 대통령은 입장문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구조 개혁은 멈출 수 없다”면서 “노동, 교육, 연금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 의견은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의대 증원 이슈가 최대 쟁점으로 부각된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이상 윤 대통령은 이재명 대표와 만나 의료 공백 해결을 위한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은 “민생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것이 그동안 한국 정치를 짓눌렀던 협치 절벽에서 벗어나 정치를 복원시킬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이재명 대표가 총선 압승 이후 15일 의대 2000명 증원과 관련해 “의정 갈등이 해결될 기미가 없다”며 “국회에 여야, 정부, 의료계,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보건 의료계 공론화 특별위원회’ 구성을 제안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도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에 책임을 다하면서 국회와도 긴밀하게 더욱 협력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한 만큼 여야가 의대 증원에 대한 큰 틀의 합의를 도출해 시급한 민생 ‘의료 공백’을 해결해야 한다. 이것이 국민들이 정치권에 바라는 민생 협치다.

2000년 6월 의약 분업 시행안 보완 시기를 놓고 여야 정치권의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요청으로 김대중 대통령과 긴급 영수 회담이 이뤄졌다. ‘선시행-후보완’을 고수하고 있는 정부 여당과 ‘선보완-후시행’을 촉구하는 야당 간의 입장 차를 상호 조율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부는 “의약 분업을 예정대로 7월1일 시행하는 원칙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고 야당은 “정부가 의료계를 힘으로 밀어붙이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김대중-이회창 여야 영수는 빠른 시일 내에 약사법을 개정하기로 합의해 의료계의 파업 사태를 진정시켰다.

이와 같이 영수 회담은 꼬인 정국을 풀 유일한 길이며 ‘상생의 정치’를 본격화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총 8번의 영수회담을 가졌다. 윤 대통령이 깊이 음미해야 할 대목이다. 민주당은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 내달 말까지 국회 본회의를 열어 ‘해병대 채상병 사망 사건 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총선 승리에 도취해 대여 강경 투쟁에만 몰입하면 국민의 뜻을 따르는 민생은 실종되고 협치는 사라진다.

이제 총선이 막을 내렸다. 선거 승패를 넘어 여야 모두 새로운 정치를 통해 국민의 지지를 받고 민생을 살리려고 한다면 자신들이 그동안 추진했던 핵심 기조와 행동에 대해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냉정하게 성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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