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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관동대지진 학살 100년과 新한일관계
 
2023-08-31 13:42:36
◆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가 기고한 칼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진도 7.9의 대지진이 일본 관동(關東)지방을 덮쳤다. 화재 등으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만 10만 명이 넘는 대참사였다. 더욱 큰 비극은, 지진의 혼란을 틈타 성난 군중과 군경이 조선인과 일본인 사회주의자 등을 학살했다는 점이다. 대지진 직후 “사회주의자와 조선인들이 방화를 하고 있다”는 유언비어가 돌았다. 일본 내무성 경보국장 고토 후미오(後藤文夫)는 3일 아침 “도쿄 부근 재해를 이용해서 조선인은 각지에 방화를 하고, 부정한 목적을 수행하려고 실제로 폭탄을 소지하고 석유를 뿌리고 방화하는 자가 있다”라고 각 현에 경보를 내렸다.

이에 부응하듯 처음 학살에 나선 것은 경찰이었다. 이날 도쿄 가메이도(龜戶)경찰서 고등계는 혼란을 틈타 요주의 인물로 감시하던 사회주의자 10명을 연행했고, 기병연대에 요청해 그들을 총검으로 살해했다. 이후 관동지방의 각지에서 성난 민중과 자경단에 의해 조선인 등이 무참하게 학살되는 사건이 이어졌다. 언론도 학살행위를 비판하기보다는 유언비어를 보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형 참사가 일어났을 때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고 기념하는지는 그 공동체를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관동대지진 100주년을 맞아 일본 사회에서는 다양한 행사가 벌어지고, 언론도 다각도로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의 ‘조선인 학살 사건’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일본 국회에서 “조선인 학살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고 사과해야 한다”는 한 야당 의원의 질의가 있었다. 이에 대해 해당 각료는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없어 응할 수 없다는 취지로 답했다.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큰 용기를 찾기 어려운 점은 참으로 안타깝다.

우리는 어떠한가? 자신의 진영을 위해서는 사실 여부 따위는 묻지도 않는 풍조가 있다. 전체를 보지 않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비난하거나 옹호하는 일이 많다. 역사를 배우고 기념하는 것은 인간과 사회의 특성을 이해하고 개선하기 위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있는 사실을 그대로 직시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어느 일면만 보면 편견을 키운다.

필자는 역사교사로서 6년 전 퇴임한 한 일본인과 20년 이상 교류하고 있다. 그는 해마다 안중근 의사 기념식에 참석하고, 전주의 중학교를 찾아 안 의사와 관동대지진 등 다양한 주제로 공동 역사수업을 실천해 왔다. 관동대지진을 한국인들이 어떻게 기억하길 바라느냐고 물어봤다. “대지진 이후 조선인 학살은 절대로 나쁜 일이며 일본인으로서 반성한다. 하지만 오카와 쓰네키치(大川常吉) 같은 행위도 있었음을 받아주면 좋겠다”고 답했다. 오카와는 대지진 당시 요코하마(橫濱)시 쓰루미(鶴見)경찰서장으로서 조선인 300명을 성난 일본인 군중으로부터 보호한 인물이다.

지금으로부터 1세기 전 우리는 관동대지진으로 치유되지 않을 민족사의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국가안보와 경제안보가 국익을 좌우하는 21세기 초연결사회에는 국가 간에도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협력의 자세가 필요하다. 2023년의 대한민국은 일본에 대해 더 이상 피해의식에 젖어 문제점만 볼 필요가 없다. 역사는 잊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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