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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기업이사는 나눠먹는 자리가 아니다
 
2020-01-22 15:03:29

◆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경제질서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노동이사제·여성임원 할당 등
국가가 지배구조 개입·규제는
사적자치·영업자유 침해 폭거


사외이사 임기제한, 여성 임원 할당, 노동이사제 도입 등 기업 이사회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하나같이 기업 이사직을 무슨 나눠 먹는 자리쯤으로 생각한 소치이다. 노동이사제부터 그렇다. 근로자가 퇴직 후 근무경력을 인정받아 이사회에 합류하는 것은 권장할 일이다. 그러나 재직 중인 근로자 대표가 이사직을 차지해서는 안 된다. 

돈을 날릴 위험을 무릅쓰고 기업을 일으킨 사람, 즉 ‘기업가’ 다음으로 중요한 사람은 그 기업을 지휘하는 사람인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이사·감사 등 임원들이다. 이들의 판단에 따라 투자금을 다 날릴 수도 있고 수천, 수만 배로 불릴 수도 있다. 그래서 전문적 경영능력이 검증된 사람들이 이사회를 지배해야 한다. 회사에는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협력하고 있다. 은행의 경우 대개 주주 몫은 10% 미만, 90% 이상이 고객의 돈이다. 이해관계자의 논리에 따르면 은행 이사회는 철저히 예금자들로만 구성해야 한다. 황당하지 않은가. 

정부는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상법 시행령을 고쳤다. 해당 상장회사에서 6년을 초과해 사외이사로 재직했거나 해당 상장회사 또는 그 계열회사에서 ‘각각 재직한 기간을 더하면’ 9년을 초과해 사외이사로 재직한 자는 사외이사가 될 수 없도록 했다. 민간회사 사외이사의 연임을 법령으로 제한하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나. 독일도 영국도 사외이사 임기가 9~12년 정도면 독립성이 없는 것으로 평가하도록 자율규범인 지배구조 코드에 정할 뿐이다. 코드는 따르지 못할 경우 그 사유를 설명하면 되는 구조다. 상법에는 ‘계열회사’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데 시행령에서 바로 계열회사를 규정한 것도 법 체계상 맞지 않다. 

‘각각 재직한 기간을 더하면’ 문구에 따라 통상 임기 3년인 사외이사가 한 회사에서 6년간 근무하면서 동시에 계열회사에서도 사외이사로 근무했다면 그는 바로 아웃된다. 상장회사협의회는 올해 566개 상장사에서 새로 선임할 사외이사는 총 718명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지만 계열회사 겸직자를 감안하면 이 숫자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사외이사는 대부분 감사위원이다. 감사위원의 선임에는 대주주의 의결권이 3%로 제한돼 총회에서 감사위원을 임명하지 못한 사례가 많았다. 감사위원인 사외이사 선임은 이제 더욱 어려워졌다.

사외이사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독립성과 전문성이다. 개정 시행령은 사외이사의 독립성만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전문성은 무시해 오히려 전문가를 쫓아내려 한다. 사외이사를 거수기로 만들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탁월한 능력이 있다면 종신토록 일한다고 해서 문제될 것이 무엇인가.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법인의 이사회 전원을 특정 성(性)으로 구성하지 아니해야 한다’는 규정도 자본시장법에 도입됐다. 여성 이사를 1인 이상 임명하라는 것이다. 위반에 대한 벌칙이 없어 문제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엄연히 법률에 규정돼 있어 이를 위반하면 법률위반이 된다. 법률을 위반해 구성한 이사회 결의는 당연 무효다. 세계여성이사협회의 ‘기업 법 준수 여부 모니터링 공개’, 스튜어드십 코드,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위 가이드라인 등이 감시에 동원될 것이다. 중장비 업종, 화학·플랜트 기업 등의 경우 업종 특성상 여성 임원을 구하기도 어렵다. 

어떤 지배구조가 가장 적합한가를 해당 기업보다 더 잘 알 수는 없다. 지식 없는 국가가 갖가지 장애물을 만들고 뛰어넘으라고 몰아치는 것은 사적 자치를 침해하고 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폭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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