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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세가 위공 박세일

  • 저 자 : 최창근
  • 출판년 : 2019.01.17
  • 가 격 : 20,000
  • ISBN-10 :
  • ISBN-13 : 978-89-93093-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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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세가 위공 박세일』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던 해 태어난 ‘건국둥이’로서 2017년 불의의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한 평생 대한민국을 뜨겁게 사랑했던 한 인물의 일대기다.
‘보수의 숨은 신()’, ‘한국 보수의 지적 상징’으로 불리던 위공(爲公) 박세일(1948~2017)의 삶의 궤적과 의미를 대한민국 현대사 속에서 조망했다.
위공 박세일이 생전 남긴 말과 글, 미 발표 유고(遺稿), 관련 서적, 언론 보도 기사, 주변 인물들의 증언을 통하여 그의 일생을 재구성했다.
2006년 박세일이 설립한 한반도선진화재단 창립 때부터 인연을 맺은 저자 최창근은 저널리즘 전공자의 장점을 살려 단순 명료한 문체로 위공 박세일의 꿈과 삶을 추적했다. 관련 자료를 추적·정리하여 밀도 있는 문장으로 위공 박세일의 삶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Part1. 가난했지만 꿈 많았던 소년

1건국둥이로 태어나다 13

2성실했던 어린 시절 18

3스님이 되고 싶던 소년 21

 

Part2. 경세제민 꿈꾸던 법학도

1주경야독의 대학 시절 29

2자네, 머리 깎을 생각 없나” 36

3취업 후 더 깊어진 사회 문제 고민 40

4크리스천 도움 받은 불제자 44

5평생 반려를 만난 코넬대학교 유학 52

 

Part3. 실증 분석과 학제 연구 방법 개척

1한국개발연구원에 몸담다 61

2월요일 1교시 법경제학 강의 68

3·검사보다는 행정 공무원이 되라” 72

 

Part4. 문민정부 개혁 주도

1문민정부 탄생과 개혁 81

2제 서열을 낮춰주세요” 86

3세계화와 교육 개혁 착수 93

4장로 대통령과 불자 수석 103

5노동법 개정 파문 108

6벽에 부딪힌 사법개혁안 117

 

Part5. 다시 대학 강단으로 돌아오다

1율곡과 다산에 심취한 야인 시절 123

2브루킹스연구소에서 나라 걱정’ 128

3세계화 표방하며 후진 양성 133

4경륜을 더한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강의 136

 

Part6. 한계에 부딪힌 현실정치

1노무현 대통령 탄핵 후폭풍 143

2박근혜 대표의 삼고초려 148

3한나라당 정책 사령탑 되다 154

4행정수도 이전 둘러싼 갈등 160

5정치 소신으로 의원직을 버리다 165

 

Part7. 한반도선진화재단 창립

1대한민국 선진화전략 구상 171

2한국의 브루킹스연구소 꿈꾸다 176

3또 정치 하시나요?” 185

4대표 민간 싱크탱크로 떠오른 한반도선진화재단 189

 

Part8. 역사는 이상주의자들의 실패로 발전한다

1진보는 정책이 없고 보수는 철학이 없다” 195

2공동체자유주의가 답이다 202

3선진 통일 운동 시작 208

4정당 국민생각창당 213

5총선 낙선과 국민생각해산 222

 

Part9. 선진 통일의 길

1선진 통일의 당위성 전파 233

2여의도연구원장 임명 둘러싼 파문 238

3청년에 대한 당부 242

4김영삼 대통령 서거와 회한 249

5마지막 한 마디, “대한민국 잘 해라!” 254

 

위공 박세일 연보 264

주석 267

참고문헌 326

부록 336

저자후기 387

위공 박세일!
부민덕국(富民德國)을 꿈꾼 이 시대의 경세가(經世家)! 

위공 박세일은 우리시대의 경세가였다. 그는 학문의 실천을 통하여 세상의 변혁을 꿈꿨다.
‘대학교수’ 박세일은 학문에 있어서 선공후사(先公後私)를 강조했다. 법과대학 출신, 법과대학 교수로서 그는 “판사·검사·변호사가 되어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는 것 보다는 국가 공무원이 되어 헌신하는 것이 보람있다”고 강조하였다. 박세일의 가르침을 좇아 수많은 제자들이 행정고등고시에 합격, 공무원으로서 국가발전을 위해 헌신하였다.

1994년 박세일은 김영삼 정부 대통령 정책기획수석비서관이 되었다. 정부의 ‘정책 사령탑’으로서 그는 ‘세계화’ 개혁에 앞장섰다. 이듬해 대통령 사회복지수석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교육 개혁, 노동개혁, 사법개혁, 재벌개혁에 앞장섰다. 그중 ‘시험을 통한 선발에서 교육을 통한 양성’이라는 법조인 선발·교육제도의 혁명적 변화를 가져 온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 시행은 박세일의 소신에서 비롯되었다. 

2005년 3월 박세일은 한나라당을 탈당함과 동시에 비례대표 국회의원 직을 스스로 버렸다. 당시 논란이 되고 있던 ‘수도 분할’에 의한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하는 정치적 소신의 발로였다. “국가의 미래에 먹구름을 드리울 것이 분명한 행정수도 분할 이전은 안된다”던 박세일은 자신의 소신을 관철하기 위해 몸을 던졌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탈당’을 함으로써 국회의원직을 스스로 버리는 헌정 사상 유일무이한 사례를 남겼다. 

“역사는 이상주의자들의 실패에서 발전한다”

2012년 박세일은 또 하나의 중대 결심을 했다. 정파적·소모적 논쟁에 함몰된 기성 정치권에 더 이상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박세일은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힘을 합친 ‘대(大)중도 정당’을 꿈꾸며 정당 ‘국민생각’을 창당했다. 박세일 자신도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자세로 사상 첫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이상은 높았으나 현실의 벽은 높았다. 박세일 본인을 비롯, 국민생각 지역구 출마자 전원이 낙선의 고배를 마셨고, 국민생각도 해산되었다. 처절한 실패 속에서도 박세일은 “역사는 현실주의자들의 승리가 아니라 이상주의자들의 패배에서 발전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삶의 후반부를 선진통일을 위해 바치던 박세일을 병마가 덮쳤다. 고통스러운 암 투병 속에서도 박세일의 머릿 속에는 오로지 대한민국 걱정 뿐이었고, 제자에게 남긴 마지막 한 마디는 “대한민국 잘해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