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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n Brief [한국 법치주의의 위기와 대안] 통권129호
 
2020-03-30 17: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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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n Brief 통권129호  


이호선 국민대학교 법대 교수

현대 문명국가의 기본적 가치는 인간의 존엄을 필두로 자유, 민주주의, 평등, 그리고 법치주의로 이루어진다. 이 중에서도 법치주의는 다른 모든 가치들을 존재케 하는 근본 수단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법치주의가 공동체에서 기여하는 가장 큰 역할은 인간에게 자율과 책임의 공간을 확보해 주는 것이다. 이렇게 확보된 공간 속에서 인간은 실존적 존재로 삶에 필요한 재화를 소유하고, 정치적 의사결정을 하며, 국가를 비롯해 타인에 대한 예측 가능한 신뢰를 바탕으로 안정적 생활을 누리게 된다.

 

1. 문명국가의 기본적 가치로서의 법치주의

법치주의는 직접적인 기본적 인권의 보장 수단이기도 하고, 나아가 경제적 자유와 풍요를 보장해 주는 시장 경제의 대전제이기도 하다. 법치주의에 의해 확보된 소유권, 거래의 자유, 분쟁의 합리적 해결, 적정한 자기 책임의 원리는 시장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들이다.

 

몽테스키외는 그의 책 <법의 정신>에서 최상위 지배자 한 명에게 모든 토지의 소유가 집중된 전제주의 하에서 토지는 경작되지 않고 내팽개쳐 진다고 하면서 아주 예리하게 사적 소유를 확보해 주지 못하는 체제가 갖는 한계를 잘 묘사하고 있다. 그런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아무 것도 수선하지 않고 개선하지도 않으며, 한 대()에만 살기 위해 집을 짓게 되므로 하수도도 파지 않고, 나무도 심지 않고, 땅으로부터 모든 것을 얻으려고만 할 뿐 아무 것도 투자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토지가 황야가 되고, 모든 토지가 사막이 된다는 것이다. 소유권은 법치주의의 자랑스러운 자식인 것이다.

 

법치주의의 또 다른 자녀는 자유이다. 몽테스키외는 자유를 확보하는 핵심으로 사법권의 독립을 든다. 사법의 독립은 법치주의를 가능케 하는 핵심이다. 독립된 사법권에 의해 확보된 자유는 그것이 소유권과 결합할 때 놀라운 경제적 효과를 가져온다.

몽테스키외의 말을 빌자면 토지는 그 비옥함에 비례해서가 아니라 그 자유에 비례해서 경작된다.

 

분쟁의 합리적 해결은 법치주의의 꽃이다. 중립적 재판관을 위해 이웃 도시 국가에서 판관들을 데려오기도 했던 중세 이태리 피렌체가 상공업의 중심지로 각광을 받고 르네상스 예술의 중심지로 번영을 구가했던 것도 이런 법치주의 정신과 무관하지 않다.

법치주의는 단지 기본권의 보장보다 훨씬 더 나아가 시장경제의 울타리로서 삶의 질을 좌우한다.

 

2. OECD 국가 중 꼴찌인 사법부 신뢰도

그런데 지금 한국의 법치주의가 위기라는 소리가 들린다. 실제로 몇 가지 수치들이 이를 증명한다. 201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회원국 37개국을 대상으로 각국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를 조사해 순위를 매긴 결과 잠정적 순위가 꼴찌로 나타났다고 한다.1) 각국 법원 사이의 순위도 그렇지만, 국내 정부기관들에 대한 국민 신뢰도 조사에서도 법원은 최하위 그룹에 속하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2018<시사인>이 청와대, 국세청, 감사원, 대법원, 경찰, 국정원, 검찰, 국회 이상 8개 국가 기관에 대한 신뢰도 조사에서 10점 만점에 3.42점으로 법원이 6, 입법부가 3.28점으로 꼴찌로 나타난 것이다.2)

 

위와 같은 수치는 비록 조사 기관과 시기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법치주의의 위기의 진원과 문제점을 아주 정확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법치주의의 위기를 논할 때 사법부를 생각하게 되고, 또 그것이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정말 근본적인 위기는 입법의 불량과 부실에서 나오는 법치의 위기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법치주의 위기의 일차적 원인 제공자는 바로 국회이다. 지난 해 패스트트랙 정국을 둘러싼 불법 사보임 논란, 쪼개기 국회, 그리고 이를 강행하면서 조악하게 만들어낸 공수처법과 준연동형비례제 가미 공직선거법은 불량 입법의 대표적 사례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4.15 총선을 목전에 두고 그 불량 입법을 주도했던 집권당이 그 수사학적 입법취지마저 공개적으로 걷어차고 위성정당을 만들어 총선에 나서는 기막힌 현실을 보고 있다. 법의 이름을 빌었을 뿐 이런 법은 법이 아니다. 공수처법 또한 한번쯤 생각해 보면 우리 헌법 체계상으로 용납되지 않는 기형아임을 알 수 있다.

 

이런 법들로 운영되는 사회를 일컬어 법치주의가 작동한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은 법의 지배(rule of law)’가 아닌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이다. 후자의 경우 법은 수단일 뿐이다. 준법(遵法)을 요구하지만, 그 준법에서는 상호 신뢰와 자유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남법(濫法)을 일삼는 자들의 노리개가 되고, 자유는 속박된다. 통치나 권력구조와 관련된 법들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문재인 정권 들어와서 경제를 망친 정책들을 담아낸 용기(容器), 즉 현실을 무시한 최저임금이나 주 52시간 법정 근무를 담는 법들이 대표적인 불량 입법이자 법치주의의 위기를 제공하는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이 법들로 인해 경제적 주체들의 자유 공간이 대폭 줄어듦으로서 시장이 덩달아 위축되고, 우리 경제는 활력을 잃고 쇠퇴하고 있다. ‘법에 의한 지배로 자유가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 ‘법에 의한 지배가 됨으로 인한 필연적인 결과이다.


3. 법치주의의 위기에 대한 대안

입법부에서 불량품이 계속 나오는 한 법치주의의 위기는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국회가 헌법 정신에 충실하게 본연의 임무를 다해야 한다는 교과서적인 답은 필요없다. 당장 필요한 몇 가지 기술적, 제도적 고안이 필요하다.

 

우선 모든 입법은 기본적으로 일몰제(sunset law)로 운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모든 법은 시행되기 전까지 그 부작용을 다 알 수 없다. 그럴듯한 입법취지는 사라지고, 있으나 마나 한, 오히려 그 존재가 사회의 장애가 되는 법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법의 존속 기한을 일정하게 정해두고 평가를 통해 수명이 연장되지 않으면 자동폐기 되도록 해야 한다.

 

둘째, 헌법과 일반법률 사이에 또 하나의 층위를 가진 <기본법>으로 하여금 입법의 정합성과 체계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도 각종 기본법이 있기는 하지만, 그 실효성이 떨어진다. 다른 법률보다 상위의 해석 기준으로 구속력을 부여하고, 그 개폐를 신중히 하여야 한다.

 

셋째, 입법과정에서의 투명성을 제고하여야 한다. 이미 음성적으로 각종 이권 세력과 정치권의 결탁이 있는 상황에서는 이런 네트워크에 들어가지 못하는 쪽만 불리할 법률들만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이제는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런 은밀한 입법에의 영향력들을 드러내도록 제도화하고, 공론의 장에서 평가받도록 해야 한다. 필요하면 로비스트 등록과 공개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넷째, 헌재나 법원에서 추상적 규범 통제를 가능하도록 하여, 법령 시행 초기부터 잘못된 것에 대하여는 적극적인 위헌법률심사를 통해 불량 입법의 무대 등장을 막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입법부에서 오는 법치주의의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는 이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그런데 입법부에서 아무리 양질의 법을 만들어 내도 최종적으로 이를 적용하는 사법부(준 사법기관인 검찰 포함)가 엄정하게 독립적이면서 전문적으로 이를 실행해내지 못한다면 법치주의는 역시 위기를 벗어나지 못한다. 법의 적용과 집행이라는 점에서 행정부도 빼놓을 수 없으나, 그 행위의 위헌, 위법성이 문제될 경우 그 종착역은 사법부가 된다는 점에서 그 초점은 역시 법원과 헌재로 맞춰질 수밖에 없다.

 

4. 준사법부와 사법부의 법치주의 위기 대안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법치주의가 살아 있다는 징표 중의 하나가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것이다. 전체주의와 법치주의는 양립할 수 없는데, 일단 전체주의 하에서 사법부라는 것은 명목에 불과하다. 예컨대, 중국의 등소평이 중국에서 삼권분립은 불필요하다고 했을 만큼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어디고 간에 사법부의 비중이 낮고 모든 통제는 당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국가 통치 구조 자체에서 실질적인 삼권의 분립이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법부는 준 사법기관인 검찰의 경우에는 조국이라는 특정인을 보호하고 울산시장 부정선거 수사를 무력화하기 위하여 검찰 직제와 사무 분장, 인사 이동이 원칙없이 자의적으로 행하여짐으로써 법치주의의 기본이 무너졌다. 법원은 이념 편향적인 일부 연구 모임 출신의 판사들의 요직 등용, 일부 판사들의 재직 중의 노골적인 정치 성향 과시 및 정계 진출 시도 등으로 스스로 독립성을 걷어찬 측면이 강하다.

 

이런 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첫째, 일단 검찰의 경우 정무적 판단 기관인 법무장관을 비롯한 정권의 월권적 수사 개입 시도를 금지하는 제도적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헌법을 무력화시킬 정도의 중대한 남법(濫法) 행위에 대하여는 헌법의 자기보호, 자기방어 기능을 작동하여 소급 입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길도 터주어야 한다.

둘째, 법원과 검찰 등 국가 수사, 사법 기관 종사자의 선출직 출마에 제한을 두어 퇴직 후 최소한 1년이 지나야 각종 선거에 입후보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법복 입은 정치 지망생들이 미리 설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셋째, 법원의 인사를 투명하게 하되, 특정 이념과 단체에 속한 자들이 요직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하고, 법원 인사의 기준과 내역을 공개하고, 판결문 공개를 통해 법관의 자질과 능력을 일반 국민이 평가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넷째, 신규 법관과 검사의 채용 문호를 일반에게 개방하여 별도의 선발 시험 등을 거쳐서 임용하도록 함으로써 사법 공직에의 보편적 접근성을 확보하고, 공무담임권을 보장하여야 한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법관과 검사의 직역이 폐쇄적으로 운영됨으로 인한 사법 불신은 법치주의의 위기 요인으로 늘 남아 있을 것이다.

 

법치주의의 위기는 민주공화정이라는 정체의 위기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당장 우리 일상과 경제적 삶의 위기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

1)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1/05/2019110500211.html

2)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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