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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n Brief [미중 무역전쟁과 한국: 익숙한 과거와의 이별, New Normal의 도래] 107호
 
2019-08-13 13:44:16
첨부 : 190813_brief.pdf  
Hansun Brief 통권107호  


최병일 한국국제경제학회 회장, 이화여대 교수

장기화되는 미중 무역전쟁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되고 있다. 작년 3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중국을 겨냥한 관세폭탄 단추를 예고했을 때, 시장은 트럼프 쇼라고 했다.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무역전쟁은 금방 끝날 것이라던 시장의 기대는 배반되었다. 그로부터 1, 그리고 더 많은 날들이 흘렀다.

 

2018 12월 부에노스 아이레스G20 정상회의에서의 90일간의 휴전은 워싱턴과 베이징을 오가는 협상으로 연결되었지만, 타협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관세폭탄은 더욱 커졌고, 전선은 무역에서 투자, 기술, 과학, 인력교류 등 전방위로 확대되어 갔다. 2019 6월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미중은 추가적인 도발을 중단하고 다시 협상에 돌입하는 것에 합의했지만, 일시적인 봉합에 불과하다.

 

중국몽: 중국의 21세기 패권의 꿈

 

미중 무역전쟁은 곁가지이고, 미중 격돌의 본질은 패권경쟁이다. 중국을 향한 무역전쟁의 폭탄을 쏘아 올린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트럼프 뒤에는 더 이상 중국을 이대로 둘 수는 없다는 미국의 초당적인 합의가 있다. 그런 미국의 결기를 부추긴 것인 시진핑 주석 등장 이후 중국의 공세적 진격이다.

 

시 주석은 태평양은 광활해서 미국과 중국이 나누어 가질 수 있다고 야심을 드러내었다. 중국은 거대해진 자신의 경제력을 기술력, 군사력으로 투사하려는 중국몽으로 21세기 패권국가가 되려는 야망을 더 이상 숨기지 않는다. “공산체제인 중국의 대국화가 세계를 위협하지 않는다화평굴기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에게 걸맞은 대접을 하라신형대국관계로 대담하게 전환 되었다. 중국은 그들이 설정한 핵심이익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집요하게 관철하고 있다. 남중국해가 중국의 영해라는 주장이 국제중재판정에서 패소했음에도 군사적 목적의 인공섬을 곳곳에 만들어서 실질적 영해화 시도는 중국의 힘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싸드(THAAD) 배치에 대한 중국의 무역보복, 중국에 취항하는 모든 외국 항공사는 대만을 중국의 영토로 분류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협박 등,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서 상대국을 경제적인 힘으로 옥죄이는 사례가 쌓여가고 있다.

 

중국 포용정책에 사망선고 내린 미국  

 

21세기가 시작될 때 미국경제의 10% 규모이던 중국은 이제 65% 규모로 까지 치고 올라왔다. 지금의 중국 경제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가입이었다. 세계최대의 시장인 미국에 다른 국가들과 같은 조건으로 시장접근을 획득한 중국은 질주에 질주를 거듭했다. 2007년 독일을 제치고 세계 3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고, 2010년에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2위의 경제대국으로 등극했다. 중국은 더 이상 경제대국에 만족하지 않는다. 경제강국이 되려고 한다. “중국제조 2025”를 앞세워 기술굴기를 통한 기술패권을 꿈꾸는 중국이다.

 

중국이 더 개방되고 개혁되리라는 서방의 기대는 배반되었다. 인터넷이 정치적 자유를 가져와 중국정치체제가 여론에 더 민감한 연성정치로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 역시 빗나갔다. 개혁개방이 지속되면서 운전대를 잡은 것으로 생각되었던 민간분야는 이제 뒷좌석으로 밀려났다. 시진핑 등장 이후 공산당은 전면에 나서고 민간분야는 확연히 후퇴하였다. 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본주의체제의 시장을 도입하는 유연성을 보였던 중국은 정치적 안정과 패권을 위해 공산당을 전면에 내세우는 이념성을 보이고 있다. 디지털 기술혁신은 경제대국 중국을 조지 오웰의 1984년을 방불케 하는 통제사회로 변모시키고 있다. 디지털 시대는 중국사회의 통제만 가져온 것이 아니라, 서방세계의 자유, 법치 인권이라는 보편가치를 조롱하고 위협하는 무기로 변모했다.

 

중국제조 2025는 잠자던 미국을 깨웠다. 중국이 5G, AI에 선두주자로 부상하는 사태는 미국을 경악으로 몰아 넣었다. 어느새 턱 밑까지 추격해 온 중국의 기세에 미국은 충격과 전율을 느꼈다. 도대체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을까. 자유무역체제는 미국으로만 통하는 일방향적인 고속도로였고, 공산당 독재라는 중국정치체제의 변화하지 않는 속성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이제 미국은 자신이 설계하고 확장하는데 가장 많은 지분을 투자해 온 고속도로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그와 생각을 같이하는 국가들에게만 진입을 허용하는 새로운 길을 만들려고 한다. 동시에 미국은 중국의 기술굴기의 핵심요소가 될 미국 기술에의 접근을 차단하려고 한다.


미중 신냉전의 시작

 

공산당 독재국가이지만 세계 경제와의 연결고리가 강해지면 중국이 정치적으로 유연해질 것이라는 기대로 가득했던 중국포용론은 폐기되었다. 미국과 중국이 세계경제위기, 기후변화, 테러와의 전쟁 등, 글로벌 문제를 위해 협력공간을 모색하던 G2시대는 퇴조했다. 중국은 기술강국, 군사강국의 야욕을 노골화하고 있고, 미국은 그런 중국의 굴기를 제압하려 한다. 

 

중국의 최대 수출시장, 핵심기술 공급처이자 인력 양성과 과학기술 학습기지였던 미국은 중국과의 연결고리를 끊으려고 한다. 미 의회는 여야 합의로 미국에서의 중국자본의 인수합병을 통한 기술획득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제재의 수위를 높이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대학은 중국의 세계적 통신기업인 화웨이와의 산학협력을 중단하고 있다.

 

중국은 국영기업, 민간기업, 학자, 유학생 등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여 미국의 정보, 연구개발, 혁신, 기술 등 지적자산을 빼가려는 장기적인 계획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오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미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우리 앞엔 붉은 경고등이 번쩍거리고 있다.” 크리스토퍼 레이 미국연방수사국(FBI) 국장이 지난 4월 미국외교협회 공개강연에서 던진 말이다. 일부 중국학자들의 미국비자가 취소 당하고, 미국 대학에 입학허가를 받는 중국본토 출신 학생의 숫자는 금년에 들어 확연히 감소하고 있음은 이런 인식의 연장선상이다.

 

같은 시기,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미국 텍사스의 앤더슨 암센터가 중국정부를 위해 스파이 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과학자 3명을 해고했다. 의학분야의 거대한 연구자금을 관리하는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미국정부의 예산지원을 받는 대학, 연구소에 해외기술유출 혐의가 있는 연구자들을 색출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음은 첩보영화의 한 장면이 아닌 실제상황이다.

 

미중 신냉전, 어디까지 갈 것 인가

 

미국은 중국과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리셋하려고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 편파적인 심판, 무용지물이 된 경기규칙, 이 모두를 다 싹 바꾸려는 미국에게 "숫자는 협상 가능하지만 시스템은 타협하지 않는다"는 중국의 태도는 스스로 협상의 달인임을 자부하는 트럼프와 미국을 자극하고, 더욱 강경하게 만들었다.


체제가 달라도 미국과 중국이 협력해 오던 그런 세상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한때 “Chimerica” (차이나 + 아메리카)라고 까지 불리웠던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상호의존성은 해제되고 붕괴되고 있다. 무역, 투자, 기술, 과학, 인력교류 등 곳곳에 장벽이 세워지고 있다. 최대의 수출시장, 핵심기술 공급처이자 인력 양성과 과학기술 학습기지였던 미국의 높은 벽쌓기는 중국굴기의 최대 위협이다. 미국에서의 중국자본의 인수합병을 통한 기술획득은 이미 경계와 제재의 대상이 되었다. 미중 대격돌이 현실화되면 중국과 미국을 연결한 글로벌가치사슬은 분리되고 와해될 수 밖에 없다. 세계 기업들의 중국탈출도 시작될 전망이다. 세계화의 상징이었던 애플 아이폰의 중국 생산기지는 축소될 운명이다.


구조적 경기하락세가 이미 진행중인 중국에게 미국과의 연결고리 해체는 중국경제를 더 어려움으로 몰고 갈 전망이다. 중국의 기술자립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타당하려면, 그동안 모방창신으로 혁신을 추구해 온 중국이 모방할 대상에의 접근이 어려워진 상황을 극복해야 가능하다. 디지털 대전환기에 중국의 기술굴기를 실현시켜줄 것으로 기대했던 5G, AI는 세계와 연결되지 못하면 이류에 머물 뿐이다.

 

안보-통상 연계되는 New Normal 도래

 

미중 무역전쟁은 전후 70년 동안 유지되어 왔던 자유무역질서를 와해시키고 있다. 세계최대의 무역대국으로 등극한 중국은 자유무역질서의 혜택만 향유하면서 책임있는 경제대국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자유무역체제의 설계자이자 최대주주였던 미국이 파괴자가 되고 있음은 놀라운 충격적인 사실이다. 미국과 중국이 자신의 목표를 위해 기존의 규범과 제도를 무시하고 힘으로 상대국을 몰아붙이는 '뉴노멀'(New Normal)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미중 패권경쟁의 가속화, 미국정치의 인기영합주의, 중국의 경제민족주의화의 거대 조류 속에 세계경제질서의 New Normal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중국을 길들일 수 있는 기회는 없다는 미국의 결기. 미국의 요구를 중국발전모델에 대한 도전, 체제 위협으로 간주하는 중국. 이 둘의 팽팽한 갈등 속에서 타협점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미중간의 극적인 합의가 도출된다고 해도, 그것은 휴전에 불과할 뿐이다.

 

미국과 중국이 그간 공존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역확대를 통한 중국의 성장이 결국에는 중국의 정치적 자유를 가져올 것이라는 미국의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때문에 미국은 중국의 WTO 가입을 허용했고, 중국을 최종조립지로 하는 글로벌가치사슬이 형성되었다. 미국은 그 가치사슬에서 핵심기술 공급과 최종 소비시장의 역할을 담당했다. 신냉전의 시작은 그러한 신념 자체가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기존의 글로벌 가치사슬은 와해될 운명에 처해 있다.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나

 

정치체제의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win-win을 추구했던 경제적 합리성이 주도했던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국내적인 반발에도 불구하고 자유경제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정치적 자산을 쏟아 부었던 그 미국은 이제 무대에서 사라졌다. 한국의 생존과 번영에 빨간 불이 켜졌다. 안보, 산업, 통상을 아우르는 냉철하고도 현실적인 국가 생존전략이 세워지지 않는다면 한국의 미래는 기약할 수 없게 되었다.  

 

IMF는 미중무역전쟁을 세계경제의 정상운행을 저해하는 최고의 암초로 지목했다. 무역전쟁은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경제성장률의 심각한 저하로 가져오고, 그 영향은 세계무역의 위축, 투자 감소, 경제심리 위축, 경영 리스크로 이어지는 확대 악순환을 가져온다는 우울한 전망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경기침체기로 접어든 한국에겐 직격탄이다.

 

중국을 세계의 공장, 미국을 세계의 시장, 한국, 일본, 독일을 중간재 공급지로 하는 3개의 축이 긴밀하게 연결되었던 글로벌 가치사슬은 와해되고 있다. 미중무역전쟁은 한국 무역의 성공방정식을 써 내려온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겨울로 접어 든 한국경제에 그나마 온기의 불을 지피게 했던 한국 수출이 뿌리 내리고 있던 지각이 흔들리고 파괴되는 지각 변동이다.

 

지각 변동은 위기이지만, 늘 그러하듯 위기는 위협과 기회의 두 얼굴로 다가온다. 중국을 기회의 땅으로만 바라보았던 한국기업에게 미중 무역전쟁은 공산당이 전진하고 민간분야는 후퇴하고 있는 중국경제체제의 실체, 공산당 체제를 위협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경제적 자유를 허용했던 '중국특색 사회주의의 속성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된다면, 지금 당장의 고통은 다른 미래를 준비하는 쓴 약이 될 것이다. 더 이상 혼자서만 세계경제질서 유지를 부담하지 않겠다는 미국 신고립주의, 미국의 경제이익과 충돌하면 동맹도 흔들 수 있는 미국 일방주의의 깊은 심연을 보고서도, 경제와 외교안보를 연결하는 국가전략을 세우지 못하면 지각변동의 난세를 통과하기는 어렵다.

 

3차산업혁명 시대 후발주자로 시작해서 선두 따라잡기 추격전으로 20세기 말 세계적인 IT 강국으로 우뚝 선 한국. 그 한국은 4차산업혁명 시대에 어디에 서 있는가. IT 강국의 고속도로엔 차량이 뜸하다. 진입차량 색깔 규제, 주행시간 규제, 운전자 옷색깔 규제, 색안경 규제 등 과잉규제로 때문이다. 운전자들은 고속도로를 기피하고 국도로 다니고, 새로운 차량을 실험하려는 운전자들은 규제 없는 중국의 IT 고속도로에 몰려든다. 4차산업혁명의 선두주자일줄 알았던 한국은 또 다시 추격전에 나서야 할 형편이다. 위기 속에서 기회를 잡으려면, 비전과 전략, 그리고 담대함이 요구된다. 한국은 이 세가지 모두 가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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