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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부역(賦役)을 기억 나아가 기록해보자
 
2019-09-09 12:58:30

◆ 박휘락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국방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박휘락의 안보백신> 부화뇌동하는 공무원, 언론, 지식인
기회주의자는 처벌 받아야…불편한 진실이지만 부역은 지금도 있다


남이(南怡) 장군은 자신이 하지 않은 역모를 자백하라는 집요한 추궁에 결국 당시 영의정이었던 강순(康純)과 함께 했다고 말한다. 강순이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하면서 남이를 원망하자, 남이는 영의정으로서 남이의 무죄를 알고 있으면서도 한마디 변호를 하지 않은 것 자체가 죄라고. 
 
우리 선조들이 그렇게 애써서 만들어 놓은 찬란한 대한민국이 이렇게 맥 없이 붕괴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엘리트와 지식인들은 어디에 있는가? 강순처럼 침묵하고 있지 않은가?  

‘부역’을 아시는가? 

어렸을 때 시골에서 “부역” “보국대” 등의 단어를 듣기는 했으나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육군사관학교 시험을 칠 때 그 단어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2차 시험을 치고 나면 신원조회를 하는데, 거기에서 문제가 있으면 시험성적과 상관없이 떨어진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 신원조회에서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부모나 친척 중 6.25전쟁 때 부역한 사람이 있느냐 여부라고 하였다. 

합격한 것을 보면 다행히 우리 식구 중에 부역한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초조했고, 어린마음에도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칼을 들이대고 부역하라는 데 어찌 거부할 수 있겠느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버지가 한 일로 인하여 자식까지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나이가 먹으면서 다소 생각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자식까지 불이익을 주는 연좌제는 당연히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부역 중에서도 따져야 할 부분이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부역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장서지 않아도 될 부역을 하는 경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뭔가 이익을 챙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불가피한 부역과 적극적인 부역 사이에 다양한 정도와 형태가 있을 것이고, 그 가담 여부와 경중을 정확하게 가리기는 어렵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비판 받아야 할 부역은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부화뇌동하는 공무원, 언론, 지식인 

현대 한국사회는 부역이라는 말이 해당되지 않을 정도로 부역은 없다. 그러나 부당하거나 불법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협조하거나 부화뇌동(附和雷同)하거나 또는 침묵하는 경우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그 전형적인 형태가 어떤 정치인이 말한 “바람이 불기도 전에 풀이 눕는다”는 말로서, 권력을 가진 사람이 지시를 하기도 전에 알아서 부당하거나 불법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 정확하게 식별하기는 어렵겠지만, 현 정부의 시행착오 중 상당한 부분이 공무원, 언론, 지식인들이 지레 짐작으로 잘못된 정책을 제안 또는 시행하여 발생하고 있을 수도 있다. 

과거의 정부에서는 ‘복지부동(伏地不動)’ 이나 ‘복지안동(伏地眼動)’이라는 말을 하면서 공무원들이 자신이 수긍하지 않는 정책에 협조하지 않거나 지체하는 경우를 비판하였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서 이러한 말은 들리지 않는다. 왜 일까? 공무원들이 바람이 불기도 전에 누워서 그런 것은 아닐까? 정부의 지도자들이 지시도 하기 전에 그들이 생각하기에 정부의 지도자들이 바라는 방향이라고 하는 정책을 제안하고, 시행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필자는 현 정부의 안보정책 방향, 그 중에서도 북핵 대응 및 한미동맹 관리에 관한 정책에 대하여 매우 걱정하면서 우려하고 있고, 현 대통령의 책임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의문이 발생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의 주도층이 북핵에 군사적으로 대비하지 말라든지,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라는 지시를 했을까? 공무원, 언론, 지식인들이 현 대통령과 정부의 방향을 지레 짐작하여 그 방향으로 제안하거나 추진한 부분은 없을까? 다시 말하면 현 정부의 안보정책 실정이 바람이 불기도 전에 그들이 추정하는 방향으로 누운 공무원, 언론, 지식인들에게 기인할 수도 있다는 가정이다.  

예를 들면, 대통령이나 정부의 핵심인사들은 성장과 복지가 균형을 이룬 경제성장을 바라고 그 방향으로 추진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관련 공무원들이 현 정부가 복지에만 신경을 쓰는 것으로 지레짐작하여 그 분야의 예산을 대폭 증대시키고, 언론 역시 복지분야에 대한 성과만 대서특필하며, 지식인들은 복지확대를 통하여 성장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만들어 내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대통령이나 핵심참모들은 실제로 튼튼한 안보태세를 강조하였을 수 있다. 그러나 국방부의 고위층과 군 고위인사들이 현 정부가 군대를 축소하고 핵위협 대비는 강조하지 않는 것으로 지레짐작하여 축소지향적인 ‘국방개혁 2.0’을 입안하여 보고하고, ‘핵’이란 단어 자체를 보고서에 포함 시키지 않고자 노력하였을 수 있다. 언론 또한 이러한 군의 노력 방향을 비판하는 대신에 미화하여 보도하고, 일부 군사전문가들도 장단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기회주의자는 처벌 받아야 

당연히 전부는 아니지만, 상당수의 공무원, 언론, 지식인들은 카르텔을 형성한다고 할 정도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묘하게 변신하면서 국가의 백년대계보다는 자신 또는 자신들이 속한 조직의 이익을 중요시해온 점이 없지 않다. 이를 통하여 생존한 공무원, 언론인, 지식인은 높은 감투를 차지하였고, 그것으로 다른 동료의 부러움과 일반 국민들의 존경을 받기도 했다. 일부는 지나친 부역적 행위로 지탄을 받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단죄없이 지나가곤 하였다. 전 정부에서 잘 나가던 인사가 그 다음 정부에서도 잘 나가는 데 성공한 경우가 적지 않다.

제2차 세계대전 시 프랑스는 독일이 본국을 점령하자 영국에서 망명정부를 구성하면서 모든 국민들에게 독일 점령자에게 협조하지 않을 것과 협력하는 사람은 나중에 처벌할 것임을 경고하였고, 실제로 드골 정부는 부역자들을 상당할 정도로 처벌하였다. 서독은 1961년 동독에서 자행되는 다양한 인권 침해 상황을 기록하고자 중앙기록보관소를 설치하였고, 통일 후 이에 근거하여 다수의 공직자들이 추방하거나 형사처벌을 받았다.

더욱 직접적인 사례는 베를린 장벽 붕괴이다. 1989년 11월 9일 오후 동베를린 시민들이 장벽 앞으로 몰려와 “서베를린으로 넘어가겠다”고 요구했을 때 동독 병사들이 이들에게 발포하지 않았고, 이로 인하여 주민들이 베를린 장벽을 넘었으며, 동서대결의 냉전도 종식되었다. 당시 동독 병사들이 서독을 향하는 동독 국민들에게 발포하지 않은 이유는 귀순자를 사살하는 동독 경비병의 명단을 서독이 유지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잘못되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다. 제대로 시행되지는 않고 있지만, 한국에서도 이러한 서독의 사례를 본받고자 북한의 인권침해에 관한 사항을 기록하자면서 법률로 통과시키기도 했다.  

이제 우리 모두 자신들의 영달을 위하여 국가의 번영과 안정에 반대되는 정책을 입안하거나 시행하는 공무원, 진실과 상관없이 정권의 입맛에 맞는 기사만 생산 및 유포하는 언론인, 그리고 국가의 번영과는 상관없이 정부의 입맛에만 맞는 정책을 제안, 수립, 시행하는 지식인들을 기억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 단계 더 나간다면 그들의 이름과 그들의 활동내역을 기록해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랬다가 나중에 그들로 인하여 국가가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되거나, 과거 정부가 크게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을 때 부역의 여부와 정도를 가려서 상응한 처벌을 가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은 부역의 유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는 국가를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입안 및 시행하고, 부역자로 인하여 진급이 늦은 등의 불이익을 받더라도 묵묵히 자신의 일에 충실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헌신과 희생을 칭찬만 할 게 아니라 이제는 부역자들을 처벌함으로써 분위기를 바로 잡기 위한 노력도 추진해야 하지 않을까? 이와 같이 부역을 기억 및 기록하는 사람이나 조직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출세 지향적이고, 이기적인 인사들의 영혼 없는 부회뇌동이나 비겁한 침묵은 억제되지 않을까?  

불편한 진실이지만 부역은 지금도 있다 

대한민국과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부역이란 존재하지도 않지만,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공무원의 신분은 보장되고, 그들은 법률과 규정에 의하여 업무를 수행하게 되어 있다. 언론인과 지식인을 포함하는 모든 국민은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할 필요가 없고, 법률에 의하지 않는 한 어떤 언행도 처벌 받지 않는다. 현 정부의 누구도 부역을 지시한 적이 있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무엇을 꼬집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부역과 유사한 사례가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시켜서 어쩔 수 없이 수행하는 부역도 있겠지만, 자신의 개인적 영달을 위하여 자발적으로 부역하는 사례도 없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면, 소득주도 성장, 한일 간의 무역분쟁, 미국과의 동맹관계, 군대의 북핵 대비 소홀 등은 공무원들이 과도하게 이행하거나 부작용이나 문제점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여 악화된 것이 아닐까? 바람이 불기도 전에 눕거나 바람이 약하게 불었을 뿐인데 과도하게 누워버린 공무원들이 있지 않을까?

언론의 경우에도 지난 8월 15일 광복절 행사 시 광화문을 메운 수십만의 국민을 거의 보도하지 않은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인터넷 포털이 검색의 우선순위에 어떤 작위적 영향을 끼친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현 정부의 경제 및 교육 정책에 대하여 지식인들의 비판 또는 보완 노력이 미흡한 점도 없지 않다. 바람이 불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바람이 불기도 전에 그랬는지를 판단하기는 어려우나 누워있는 공무원, 언론인, 지식인들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부역자는 기억·기록되어야 

서양 영화에서 가끔 보게 되는 장면이 있다. 온갖 나쁜 일을 다 저지르는 포악한 악당 보스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잘못된 일을 지시할 때 2인자 또는 3인자가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면서 반기를 드는 장면이다. 악당 보스는 당연히 광분하지만 머뭇거리던 부하들이 하나 둘씩 반대자들 쪽으로 자리를 옮기자 악당보스도 어쩔 수 없이 물러서는 장면이다.

진급이나 직장유지에 대한 공무원들의 압박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정책을 입안 또는 시행할 때 이것이 부역의 성격일 수 있는지, 그렇다면 불가피한 일인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 데 어떤 이익을 바라서 그렇게 하는 것 인지를 판단을 해보기를 바란다. 언론인과 지식인들은 이 정부 들어서 취업률이 어떻게 떨어졌는지, 출산률은 어떻게 되었는지, 국가채무는 얼마나 증대되었는지. 복지예산이 새는 곳은 어디인지, 군은 왜 핵 대비를 하지 않는지, 왜 일본과 무역분쟁을 시작했는지 등 근본적인 문제에 관하여 의문을 제기하고, 국민들에게 알리며, 정부에게 시정을 요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현 정권도 잘못된 부분을 시정하여 잘하게 될 것이고, 우리나라도 발전하지 않겠는가?  

정치인들의 경우 자신의 지시를 철저하게 수명할 뿐만 아니라 미리 알아서 시행하는 공무원, 언론인, 지식인을 좋아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들이 정치인을 파멸시키고 있을 수 있다. 그들은 국가나 정권의 성과는 상관하지 않기 때문에 업적을 내기 어렵고, 정권이 힘을 잃으면 단죄의 증거를 제공하면서 책임을 모면하고자 하는 사람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정책이 잘못되었다고 과감하게 건의하면서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이야말로 정치인들이 삼고초려하여 발탁해야 할 사람이다. 

필자는 주변의 사람들이 현재 행동하는 바를 기억해 놓으려 한다. 바람이 불지 않는 시간이 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오면 필자는 그 기억을 되살려서 부역 여부와 정도를 판단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어떤 조치를 강구할 것이다. 우리 국민 모두가 이러한 생각을 가지면 어떨까? 모두가 부역을 기억 또는 기록한다면 우리의 공무원, 언론인, 지식인들은 더욱 조심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정권마다 겪는 불필요한 시행착오가 최소화되면서, 대한민국은 더욱 합리적인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강순’은 되지 않아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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