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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필드트립] 내 마음을 흔든 연경맥주
 
2014-10-29 16:12:55
내 마음을 흔든 연경맥주
배동주(고려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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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맥주그룹 본사>

?중국하면 떠오르는 문장(文章)이 있다. “인간은 지금까지 하늘의 별을 보고 방향을 잡고 전진해 왔다. 그런데 인간이 이룩한 문명이라는 것이 이렇게 밤하늘의 별을 지워간다면 인간은 결국 방향을 잃고 방황하게 될 것이다.” 러시아 소설가 도스토옙스키가 공기 오염으로 별빛이 희미해진 런던의 밤하늘을 보며 한 말이다. 별을 볼 수 없는 나라 그래서 별 볼일 없는 나라. 내 생각 속 중국, 그리고 베이징은 그런 곳이었다.

CIA기준 1,355,692,544명 인구와 89,393억$ 세계 2위 GDP. 어쩌면 별 볼일이라도 없기를 빌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놀라운 성장이 두려웠다. 내 바람은 얄궂게도 노랗고 시원한 맥주로 깨져버렸다. 도착 첫날부터 연경맥주(북경의 옛 이름이 연경이어서 붙은 이름, 춘추전국시대 북경 지역은 연나라 땅이었다)를 들이킨 게 문제였다. 맥주라도 맛이 없었다면 좋았을 것을.

오래된 것은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오랜 시간을 버텼다는 것은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 연경맥주 맛이 그랬다. 알콜도수가 4도 이하로 낮은 연경맥주를 마시면서 계속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맛있었다. 쓴맛과 보리향은 유럽 유명 맥주에 못 미쳤다. 하지만 깔끔한 풍미 속에 담긴 부드러움은 놀라웠다. 100년 전통의 노하우 집합이 풍기는 기 또한 만만치 않았다. 맥주 맛은 일찌감치 중국에 대한 나의 두려움을 스스로 마주하게 했다.

중국을 여행하며 ‘힘이란 생각의 틀조차 바꾸게 하는 구나’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인구와 땅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힘은 과거, 없는 호수를 만들고 없는 산을 만들게 했다. 자금성과 만리장성의 크기보다 십찰해와 그 옆 산, 그리고 천단공원이 그 존재로 놀라웠다. 그리고 그 힘을 연경 맥주 공장에서 다시 느꼈다.


<연경맥주에서 생산하는 제품들>

여행 마지막 날, 방문한 맥주공장 전경이 잊히지 않는다. 거대하고 기민해보였다. 중국 내 생산량 1위를 보증하듯 맥아 향은 넓은 공장 구석구석 퍼져있었고, 초록의 맥주병은 쉴 새 없이 맥주를 담아내며 기계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야말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힘을 수십 년에 걸쳐 모색한 저력이 느껴졌다.

중국 대표 맥주하면 으레 청도맥주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실제 중국 맥주시장의 최강자는 연경맥주로 꼽힌다. 연경맥주가 맥주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 인민대회당에 독점납품권을 따내면서였다. 2000년에는 청도맥주가 연경맥주의 아성에 도전하기 위해 북경에 입성했으나 결과는 호랑이와 고양이의 싸움에 불과했다. 청도맥주가 참패한 것이다. 이후 연경맥주는 청도 공략에 나섰고, 산동성에서 시장점유율 25%를 차지하고 있다. 연경맥주는 현재 중국 내 14개 지역에 공장을 가동하고 있으며, 북경·하북·천진·내몽고에서는 50%에 육박하는 높은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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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리 플레닛>이라는 여행 잡지에 한국 맥주는 특징이 없고, 밍밍하며, 심지어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다는 평가가 실린 적 있다. 놀랄 일도 아니다. 한국 맥주는 맥아 발효로 16도짜리 맥주 원액을 만들고 여기에 물을 부어 알콜도수를 5~6도로 낮춰 양을 늘린다고 한다. 부족한 청량감은 탄산가스 주입으로 보충하다 보니 자연히 특징은 사라졌다. 우리 맥주가 맥주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중국의 연경맥주보다 맛이 떨어지는 결정적 이유다.

괜한 시기심에 던진 질문이 있다. “중국 맥주하면 그래도 청도맥주다. 연경맥주를 내가 이전에 몰랐던 이유는 무엇일까?” 직원의 답변은 이랬다. “우리는 그동안 내수시장에 주력해 왔다”며 “중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거대한 시장을 지녔다. 내수 시장에서 1위를 차지했으니 이제 국제 시장 진출을 생각하고 있다.” 과거 성장의 과실에 취해 고민은 제하고 돈을 쫓아온 우리는 중국을 보며 ‘아니 어느새 이렇게 무서워진 걸까?’라며 뒤늦은 탄식을 뱉는다. 중국인들의 입맛을 빠른 속도로 장악해온 만큼 세계 맥주 시장 제패도 가능할 것 같았다.

다행히 중국 하늘에 뜬 별은 보지 못했지만, 중국의 빛나는 힘을 보고 말았다. 친구는 내게 그건 그냥 중국의 한 면에 불과하니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한다. 아닐 것이다. 조선후기 문인 이용휴가 꿈에 너무도 고운 여인을 보았으나 얼굴의 반쪽만 보고, 다른 반쪽에 대한 그리움으로 병을 앓는 한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보지 못한 반쪽은 이미 본 반쪽과 똑같다.” 중국에서 마신 그 노랗고 시원한 연경맥주가 맛이라도 없었으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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