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화 담론 남용(濫用)의 시대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질문자 스스로 얼굴이 빨개지는 질문이다. 행복이라는 것이 어디 손에 잡히거나 정의되는 것인가. 혹은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인가. 본지는 지난 달 20대를 대상으로 선진화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고백하자면, 설문 조사 질문으로 “선진화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라고 물을 때 역시 얼굴이 빨개졌다.
행복이란 단어처럼 많이 쓰이면서 그 정체가 애매한 것은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선진화가 딱 행복 같았다. 전 국민에게 행복에 대한 설문 조사를 한다 해도 50%이상 합의하기 어려운 개념이 바로 행복이다. 행복이 이렇게 애매모호하기 때문에 철학에서 즐겨 다룬 주제가 되지 않았나 싶다. 선진화에 대한 설문 조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술력, 도덕성, 정치, 담배값 인상, 성형, 사치와 같이 답변자 100명에게서 수없이 많은 선진화 ‘관념(觀念)’이 나왔다. 이제는 선진화를 철학의 영역으로 보내야하는 걸까.
용어의 쓰임을 살펴보면 답변이 그토록 분화된 이유를 알 수 있다. 우리는 선진화를 지나치게 남용하고 있다. 편지 한 통을 부치기 위해서도 ‘공공기관 선진화’를 주창하는 우체국에 들러야 한다. ‘금융선진화’된 은행에서 돈을 뽑고, ‘대학선진화’를 위해 등록금을 납부한다. 선진화가 빠진 우체국, 은행, 대학은 어떤 면에서 다를지 궁금하다. 한국 사회는 선진화인지도 모르는 선진화 속에서 대한민국 선진화를 말하고 있다.
지금은 대한민국 선진화가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모든 단어의 뒤에 선진화라는 단어를 붙이는 사람들은 결과만을 따지는 모양이다. 국회 선진화 법이 몸싸움 빠진 국회를 만들었지만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국회 모습을 갖추게 하지는 못했다. 왜 자꾸만 선진화라는 단어를 이용해 일면적 결과를 도출해 내려고 하는 걸까. 고민 자체가 빠져있다. 왜 자꾸만 물음표를 구부려 마침표로 만들려는 걸까.
선진화를 물으며 얼굴이 빨개지는 이유는 아직 우리 사회가 선진화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모든 단어의 뒤에 선진화를 붙여 결과를 도출해 버리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선진화를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9월 한반도선진화재단이 주최하는 ‘대한민국 선진화 지수 발표’ 심포지엄에서 깊은 고민이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배동주 기자, 청년한선기자단 1기)